-코카콜라의 역사

 

1886년 뉴욕 시의 항구.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그 자태를 갖추고 있을 즈음 그 곳으로부터 800 마일 정도 떨어진 다른 지점에서는 또 하나의 미국의 상징이 세상에 막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여러 위인들처럼 남북전쟁 참전용사이자 아틀랜타의 약사였던 존 펨버턴 역시 단순한 호기심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펨버턴은 여러 가지 약제들을 조합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오후 두통을 경감시킬 응급제를 찾던 중 그의 냄비 안에서 캐러멜 색의 향기로운 액체를 섞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액체가 완성되자 이웃의 자콥 약국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혼합액에 탄산수를 더한 후 약국의 손님들에게 시범으로 맛을 보게 했습니다. 손님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 새로운 음료는 뭔가 특별하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자콥 약국에서는 이 음료수를 한 잔에 5센트로 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펨버턴의 회계 담당자였던 프랭크 로빈슨은 이 혼합물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붙여 그의 독특한 필체로 적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코카-콜라는 그가 썼던 그대로 전세계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대중에게 선을 보인 첫해 코카-콜라는 약 하루 9잔 정도로 판매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백 년 후 코카-콜라는 일년에 거의 400 리터의 원액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펨버턴은 발명가이지 사업가는 아니었습니다. 또 그가 발명한 것이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제품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1888년에서 1891년 사이에 펨버턴은 자신의 사업을 모두 합쳐 약 $2300에 아사 캔들러라는 아틀랜타 사업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캔들러는 코카-콜라 첫번째 사장이자 코카-콜라와 브랜드에 실제적인 비전을 부여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부적인 사업가였던 아사 캔들러는 코카-콜라를 단순한 발명품에서 하나의 사업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그는 시장에 갈증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캔들러는 그러한 소비자들에게 이 새롭고 흥미로운 음료를 소개하는 재기에 넘치며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코카-콜라를 한번 시음해볼 수 있는 쿠폰을 나누어 주었고, 코카-콜라를 배급하는 약국에는 코카-콜라 상표가 달린 시계, 단지, 달력 등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디에서나 코카-콜라를 보게 되었고 이러한 적극적인 홍보는 그에 따른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1895년 캔들러는 코카-콜라 원액 제조 공장을 시카고와 달라스, 로스엔젤레스에 세웠습니다. 코카-콜라가 이와 같은 인기를 얻게 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이 음료를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고자 하는 수요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1894년 조셉 비덴한이라는 사업가는 최초로 코카-콜라를 병에 담아 시판했습니다. 그는12개의 병에 코카-콜라를 담아 캔들러에게 보냈으나 그로부터 이렇다 할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비록 캔들러가 명석하고 혁신적인 사업가였지만 그는 코카-콜라 성공의 핵심은 고객들이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병에 담긴 음료라는 점에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5년 후인 1899년 두 명의 채터누가시의 변호사인 벤자민 에프 토마스와 조셉 비 와이트헤드가 총 1 달러에 코카-콜라를 병에 담아 판매할 독점권을 취득할 때까지 그 핵심을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모조품이 떠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브랜드의 성공에 대한 증거로 기분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코카-콜라의 성공을 이용하려는 가짜 음료들의 성행을 그저 반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코카-콜라는 훌륭한 제품이자 훌륭한 브랜드이며 이 두 가지 모두 보호되어야만 했습니다. 이 시기의 코카-콜라 광고는 진짜 코카-콜라라는 면모에 초점을 맞추어 소비자들에게 진짜를 드십시오”, “모조품을 거부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촉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는 코카-콜라만의 독특한 병 모양을 고안하여 사람들이 진짜 코카-콜라를 식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16년 인디아나주의 테러호트시의 루트 글래스 사에서 그 유명한 코카-콜라 병을 생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코카-콜라를 특징짓는 이 병은 사람들의 눈을 끄는 모양과 독창적인 모양과 어둠 속에서도 진품을 가려낼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코카-콜라는 날로 성장하여 쿠바, 푸에르토리코, 프랑스 및 다른 국가 들과 여타 미국령으로 전파되었습니다. 1900년에 코카-콜라 제조업체는 겨우 두 군데에 불과했습니다. 1920년에 이르자 약 1,000개 이상의 음료 제조업체에서 코카-콜라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코카-콜라의 역사에서 우드러프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드러프는 1923년 그의 아버지 어네스트가 코카-콜라를 아사 캔들러로부터 매입한지 5년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코카-콜라 사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캔들러가 미국에 코카-콜라를 선보였다면 우드러프는 코카-콜라의 대표로서 거의 60년 이상을 전세계에 코카-콜라를 알리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우드러프는 어디서나 사업 확장의 기회를 발견했던 마케팅의 천재였습니다. 그는 혁신적인 광고와 홍보활동을 통해 전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코카-콜라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 선수단과 함께 했고, 코카-콜라 로고는 캐나다의 개 썰매 경기와 스페인의 투우장의 벽을 장식했습니다.

 

우드러프는 코카-콜라의 6개들이 상자와 개방형 냉각기 등 여러 혁신적인 발명품들을 개발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주부들이 집에서 쉽게 마개를 딸 수 있는 코카-콜라 6개들이 한 상자를 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여성들을 파견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코카-콜라 브랜드가 찍힌 병따개를 배포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상자 속에서 벗어나기식의 사고 방식은 바로 그 시대에 코카-콜라를 이끈 우드러프의 리더쉽이 반영된 것으로 코카-콜라가 단순한 엄청난 성공작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 자리잡도록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1941년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드러프는 회사에 얼마나 부담이 되건 간에, 어디서든 코카-콜라 한 병을 5 센트에 마실 수 있다.”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194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은 코카-콜라에 긴급 전보를 보내 해외에 10개의 코카-콜라 현지 생산공장을 짓도록 요청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많은 유럽인들이 코카-콜라를 처음 접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전쟁이 종결되자 코카-콜라의 판매망은 유럽 각지로 확대되게 되었습니다.

40년대 중반에서 1960년까지 코카-콜라 제조업체의 수는 거의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종전 후 미국은 낙관주의와 경제적 번영에서 오는 활기로 충만했습니다.

 

코카-콜라는 즐겁고 유쾌한 생활 양식의 일부가 되었으며 코카-콜라의 광고에 사용되었던 이미지는 그 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카-콜라 브랜드의 75년 간의 경이적인 성공 이후, 코카-콜라는 스프라이트(1961), 터부(1963), 프레스카(1966)와 같은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였습니다.

코카-콜라는 매년 전세계적으로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캄보디아, 몬트리얼, 파라과이, 마카오, 터키 외에 다수의 국가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 사업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던 코카-콜라 광고는 70년대에 이르자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전적으로 즐거움 그리고 자유와 연계하는 명실상부한 국제 코카-콜라 사업의 일환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의 국제적인 성격은 1971년 광고를 통해 엿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이탈리아의 언덕 꼭대기에 한데 어울려 전 세계에 콜라로 한턱 내련다.”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1978년 코카-콜라는 포장 청량 음료를 중국에 시판하도록 허가 받은 유일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종아리 워머와 머리띠, 헬스 열풍의 시대였던 80년대는 코카-콜라에 있어서도 변화와 혁신의 시대였습니다. 1981년 로버트 고이주에타 회장이 이사회 의장겸 코카-콜라 경영 최고 책임자를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1961년 카스트로 치하의 쿠바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던 고이주에타 회장은 그가 지적 모험이라 부른 새로운 전략을 통해 코카-콜라를 전면 재조정했습니다. 그의 과감한 개혁 중 하나는 수많은 미국 코카-콜라 제조 사업을 코카-콜라 주식회사라는 하나의 주식 회사로 전환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이어트 코-크를 출시하여 코카-콜라 상표 내에서 최초로 브랜드를 확장했습니다.

다이어트 코-크는 2년 만에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저칼로리 음료로 성장하여 코카-콜라에 버금가는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1985년 고이주에타 회장이 착수한 또 하나의 과제는 바로 코카-콜라의 맛을 혁신하는 것이었습니다. 99년 동안 이어온 코카-콜라 제조법에 대한 최초의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눈을 가리고 시행한 시음 테스트에서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맛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은 코카-콜라의 원래의 맛에 대해 감정으로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코카-콜라의 맛을 되돌려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게 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사건을 최고의 마케팅 실수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이주에타 회장은 성공한 투자가인 워렌 버펫씨가 일찍이 평했듯이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바꿀 줄 아는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코카-콜라는 코카-콜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원래의 맛의 코카-콜라를 복귀시켰습니다. 그리고 코카-콜라 클래식의 판매는 경쟁 제품을 제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시장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는 코카-콜라가 성장을 거듭한 시기였습니다. 이 동안 올림픽, FIFA 월드컵 축구, 럭비 월드컵, NBA 농구 등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스포츠와의 오랜 제휴 관계가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코카-콜라는 NASCAR(미국 튜닝카 레이스)의 공식 음료로 지정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스포츠 하나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1993년에는 널리 호평을 얻은 언제나 코카-콜라(Always Coca-Cola)” 광고 캠페인이 도입되면서 사랑스런 코카-콜라 북극곰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1990년에는 동독에서 코카-콜라 제품이 판매되고 1993년에는 또다시 인도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습니다.

 

파워에이드 스포츠 드링크, 쿠우 어린이 과일 음료, 다사니 생수 등을 비롯한 새로운 음료 브랜드가 출시했습니다. 인도의 림카(Limca), 마자(Maaza), 떰즈 업(Thums Up), 미국의 바크스(Barq’s) 루트 비어(무알콜 맥주맛 음료), 페루의 잉까 콜라(Inca Kola), 영국의 캐드베리 스윕스(Cadbury Schweppes’) 음료 브랜드 등, 전세계 120개국 이상에 걸친 기업 인수를 통해 브랜드의 종류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1997년에는 이미 매일 10억 개의 제품을 판매하기에 이르렀지만, 성장을 위한 기회는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1886년에 코카-콜라는 애틀랜타에 있는 작은 약국의 단골손님들에게 청량제를 선보였습니다.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코카-콜라의 목표는 사람들이 400개가 넘는 브랜드 중 하나하나를 마실 때마다 마법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보스턴에서 부다페스트, 바레인에 이르기까지 코카-콜라의 애호가들은 암바사, 베지타베타, 프레스콜리타 같은 코카-콜라의 여러 브랜드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곳이라 할지라도 코카-콜라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음료를 좋아하고 언제 어디서 마시고 싶어 하는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지역 시장에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인연이 닿는 모든 분들에게 상쾌함과 혜택을 제공하기 위하여 현지의 보틀링 파트너들과 더불어 지역 공동체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하루에 겨우 아홉 병씩 생산되던 초창기를 거쳐, 하루에 14억 개가 넘는 음료를 판매하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코카-콜라의 어떤 브랜드를 고르든, 매 순간의 이러한 선택이 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만족스러운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http://company.cocacola.co.kr/AboutCocacola/history_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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