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어떻게 디자인을 전공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를 처음 본 사람 중에선 부유한 집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데, 생각보다 제가 낙후 지역에서 살았거든요. 지금의 목동인데, 당시는 개발되기 전이라 집 주변이 모두 논밭인 변두리였죠. 강남이란 곳도 대학 오고 나서야 처음 가봤어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학과가 있는 줄 몰랐어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심지어 옷을 사면 태그 같은 걸 모아두고 거기 그려 있는 로고를 따라 그려보곤 했으면서도 미대는 서양화나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들만 가는 곳인 줄 알았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하려면 컴퓨터를 해야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이과 공부를 했지요. 그러다가 공대에 합격하고 나서야 미대에 디자인이라는 전공이 있고, 그것이야말로 제가 진정 바라는 일을 하는 전공이란 걸 알게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재수를 해서라도 디자인과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당시엔 저희 집도 그다지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인생엔 때가 있으니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며 아들의 결정에 동의해주셨죠. <미대입시> 잡지에 실린 광고 중에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냈다는 미술학원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운이 좋게도 1년 만에 합격할 수 있었지요.

 

네이버라는 강력한 미디어의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잖아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겸험을 쌓았습니까?

이미지드롬(www.imagedrome.com)을 창립한 홍상진 선배가 삼성전자 웹사이트 리뉴얼 프로젝트를 맡았어요. 그걸 할 수 있는 후배를 찾았는데, 당시 저와 친구였고 지금은 디스트릭트 공동 대표인 김준한 씨와 그 일을 맡게 되었지요. DB란 개념이 없어서 삼성전자의 제품에 관한 정보를 하나하나 손으로 채워 넣느라 일을 정말 엄청나게 했죠. HTML 코딩부터 포토샵 작업까지 모두 직접 했어요. 당시 저희 집이 어려워서 돈을 벌고자 맡아서 한 일이지만, 그 당시엔 웹에 대한 인식이 낮아 보수가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디자인 능력을 갖춘 인재로 소문이 퍼졌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특별히 웹 디자인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디자이너가 대부분 그렇지만 저 또한 본래는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고, 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거나, 혹은 한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전체를 총괄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프리챌에서 로고를 비롯해 웹사이트 디자인까지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프리챌은 그 당시 5, 6명 밖에 없는 아주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의 조직이라면 온전히 내가 이 브랜드를 끌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즈니스 모델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요. 대부분의 동호회가 온라인 만남만을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프리챌은 오프라인 동호회를 사이버에서 구현한다는 콘셉트였거든요. 저는 항상 아날로그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좋았어요. 당시 프리챌 로고는 회색 픽셀들 속에 와인색과 황색 픽셀이 섞여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했는데, 비정형적인 로고라는 것이 특징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길게 쓰든 얇게 쓰든 프리챌의 로고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디자인했지요. 또 한 가지 프리챌의 혁신적인 점은, 웹사이트 메인 화면 가운데에 커다란 이미지를 집어넣었다는 점이에요. 당시만 해도 이러한 일은 로딩 시간을 늘리는 일이라 여겨졌기에 금기시하는 사항이었거든요. 그랬던 걸 저는 압축도 하고 디더링도 잘해서 용량을 최대한 줄여 사이트 방문자로 하여금 변화의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수단으로 썼어요. 그러면서 나중엔 이걸 이용해 광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지금의 포털들은 바로 그 자리에 배너 광고를 넣고 있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했던 디자인에 애착이 많아요.

 

그럼 언제 어떻게 해서 네이버로 오게 되었습니까?

프리챌에 있던 중 이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평생 프리챌만 디자인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분사를 했어요. ‘인디챌이란 이름으로 분사해 프리챌 디자인 외에도 다른 회사 외주 용역도 하는 식으로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하지만 웹디자인보다는 오히려 아이덴티티, 인테리어나 제품 등 다른 작업을 더 많이 하려 했지요. 청계천 등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모아 크리스마스트리 키트를 만들어 팔기도 했고, 신발도 팔고 다양한 일을 1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가 2003년에 NHN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거지요. 솔직히 처음엔 그다지 끌리지 않았어요. 프리챌 때도 그랬지만, 웹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처음부터 웹을 하겠다고 생각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쪽으로 온 사람이 많아요. 공인된 전문가가 따로 없다 보니 각자 한마디씩 던지게 마련이고, 뭔가 결정을 위해선 거쳐야 하는 협의나 논쟁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데 현재 NHN의 이사회 의장이자 CSO(Chief Strategy Officer)를 맡고 계신 이해진 의장님과 만나면서 프리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내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네이버가 지금처럼 강하지는 않았어요. ‘지식in’ 서비스가 막 뜨기 시작한 무렵이었죠.

 

많은 사람이 네이버와 구글을 비교합니다. 절대적 가치로 비교할 수는 없을 듯해요. 조수용 본부장님이 생각하시는 네이버의 장점, 그리고 구글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구글은 인터넷 상의 많은 문서 중에서 괜찮은 것을 어떻게 가려낼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면, 네이버는 일단 한글로 된 문서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근본적 차이입니다. 네이버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점이라면 가두리 양식장처럼 네이버 내부의 콘텐츠를 가둬두고 있다는 부분일 텐데,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 생각해보시면 한글로 된 콘텐츠 자체가 부족했어요. 일단 사용자들로 하여금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는환경을 일구는 것이 과제였지요. 네이버는 한글로 된 디지털 문서가 많이 만들어지게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아직 일본어로 된 쓸 만한 정보가 웹 상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도 도서관에 가거나 주간지를 읽어봐야 하거든요.

 

조수용 본부장님이 맡고 있는 CMD(Creative Marketing & Design) 본부는 400명 가까운 인원이 있는 조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큰 조직을 관리, 리드하고 계신가요? 이런 일을 하는 친구들은 평가하고 보상하는 것,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에 익숙지 않거든요. 디자이너가 만드는 건 수치화하기 어려운 정성적인 요소가 많긴 합니다만,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상하고 개인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게 하는 것이 너무 대기업스러울 수 있는 부분을 여전히 디자인 조직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자기의 작업 결과물이 조직장에게만 보고되는 것이 아니고, 유리벽 안에서 일하듯이 누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본부 내에 완전히 공개되도록 되어 있거든요. 누가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인재인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두가 확실히 알 수 있게끔 하고 있어요.

 

직원들은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런 거짓말은 서로 하지 말자라고 해요. 대신 저는 너의 디자인 능력이 떨어진다고 당장 우리 회사가 위기에 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구태의연해지다가 너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두렵지 않나?’하고 묻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센스가 높지 않으면 만날 혼나고 지적 당할 테니, 결국 자기만 힘들어져요. 이 정도로 투명하고 연차에 구애받지 않는 회사에서 나이 먹고도 말단 사원에만 머물러 있는다는 건 불행하잖아요.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꼭 디자인을 해야 하는 건 아니죠.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온다면 차라리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는 게 좋겠죠. 물론 무척 힘들어 하는 직원도 있지만, 다른 길을 찾아가 결국 더 잘된 친구도 있어요.

 

직원을 다루는 노하우를 알고 계신 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저 자신이 그런 위기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면도 있어요. 저 자신이야말로 이제는 편하게 살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긴장감이 떨어지면 경쟁력도 떨어지게 마련이죠. 이대로 대기업 분위기에 익숙해져 나태해진다면 10년 후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섬뜩해져 마음을 다잡게 되죠.

 

NHN은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무척 가고 싶은 기업으로 꼽힙니다. NHN의 신입 디자이너를 뽑을 땐 어떤 점을 보시나요?

딱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를 3개만 꼽아 그 브랜드가 어떤 순간에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얘기해보라고 해요. 많은 학생이 스타벅스나 애플 같은 것을 예로 드는데, 상당수는 자기가 직접 그 브랜드를 사용하며 깨달은 얘길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칭찬한 걸 주워 듣고 얘기를 해요. 자신의 감각은 둔감한데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먼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민감도가 높아야 디자인이나 마케팅을 잘할 수 있거든요.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경험엔 신경 쓰지 않고 아무 물건이나 사용하고 있다는 건 이상한 거예요. ‘언제 어디서 무얼 써봤는데 그게 왜 좋았는지를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민감도를 알 수 있어요. 마케터에게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마케팅에 당했는가를 꼽아보라고 해요. 자신이 마케팅 기획을 할 땐 이것저것 생각하다가도, 막상 TV광고를 볼 땐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 사람은 조만간 그저 타성에 젖은 회사원이 되고 말아요.

출처: https://www.slideshare.net/cbs15min/ss-681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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